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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구성읍 심근도 씨 가족

2015-10-11

 

경기 용인시 구성읍 마북리에서 분재와 함께 푸르게 살아가는 심근도 씨 가족.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다른 분재 사랑을 키워 온 남편 심씨, 나무와 꽃을 가꾸며 사는 행복에 돈 욕심은 예전에 버렸다는 아내 최경혜 씨, 그리고 부부의 금쪽 같은 두 아들. 이들이 피어내는 사랑 꽃은 어떤 빛깔일까.

심근도(50)·최경혜(49) 씨 부부의‘ 푸른 분재 사랑곳’은 요즘 월동 준비가 한창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걷어놓았던 비닐 막 을 다시 치고, 낙엽을 치우고, 겨울 동안 병해가 없도록 나무마다 일 일이 소독을 해주다 보면 날마다 열두 시를 넘기기 일쑤다. 어른 주 먹만하게 자란 나무를 포트에 옮겨 담고, 하루 두 차례씩 물을 주고, 때 맞춰 분갈이를 하고, 가지를 치고, 잎을 솎아내고…. 사시사철 쉴 틈이 없는 게 분재 일이다.

꽃망울 터뜨린 나무가 시름과 고단함 달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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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에 이사를 와서 미처 정리를 덜 했어요. 다른 이사하고 달 라 분재원을 옮기려면 2년 이상 걸립니다.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이사하는 게 아니고, 하우스 한 동 짓고 옮겨놓고, 또 한 동 짓고 옮 겨놓고 해야 하니까요.” 기자의 방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악수를 청하는 심씨의 손이 투 박하기 그지없다. 손톱 속에도 흙물이 잔뜩 배어 있고, 작?복도 흙 투성이다. 소박하고 털털한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곳을 찾아오는 동안 괜한 걱정을 한 탓이다.

경부 고속도로 수원 나들목에서 나와‘ 푸른 분재 사랑곳’을 찾 아오는 길. 논밭 사이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차 있는 그곳 은 너무나 도시화된 모습이었다. 용인을 비롯해 서울 근교 농촌 거 개가 그러하겠지만, 혹시나 심씨 부부도 세련된 도시인의 모습을 하 고 있으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전원에 산다’에 도시 사람 이야 기를 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러니 투박한 ?캺 그대로 인 심씨의 모습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던 것.

‘푸른 분재 사랑곳’의 주인장 심씨 부부를 만나게 된 것은 인터 넷을 통해서였다. 지면에 담아낼 취재원들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인터넷 서핑. 농장 홈페이지 를 100여 곳쯤 들락댔을까.‘ 푸른 분재 사랑곳’이라는 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홈페이지 안의 이 방 저 방을 둘러보는 사이 분재에 대한 부부의 열정이 전해져 왔다.

일본말 투성이인 분재 용어를 우리말로 새롭게 정리하고, 분재 를 대중화·세계화시키기 위한 부부쟀 노력이 홈페이지의 곳곳에 서 묻어 났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때나 코흘리개 아들이“ 아빠 는 편하게 과자 가게나 하지”라며 투정을 부릴 때“, 왜 이리 고된 길 을 가는가”하는 자괴감에 빠져드는 부부. 그러나 꽃망울 터뜨린 나 무의 고운 자태에 감격해“ 가다가 그만두면 아니 가느니만 못하다” 며 마음을 다잡는 부부의 인간적인 모습 또한 홈페이지 곳곳에서 엿 볼 수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홈페이지 얘기부터 꺼냈더니“ 그동안 이사하느 라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며 심씨가 손사래를 친다.“ 조금씩 정리 가 돼 가쾴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해야지요. 지금은 누가 오신다 고 해도 걱정입니다. 분재는 손길 주는 것만큼 멋이 나는데, 지금은 작품들이 성에 차지 않거든요.” 문외한의 눈에는 모두 좋아 보이는데, 그게 다가 아닌가 싶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분재와 함께해 온 그이기에 작품에 대한 욕 심 또한 남다른가 보다. 농고를 졸업하고 고향인 합천에서 과수원 을 하던 그가, 분재를 처음 접한 건 전원생활의 전신인‘ 새농민’을 통해서였다.

“제 나이 스물 한 살 때인가 이강수 씨라는 분이 새농민에 연재 한 분재 기사에 매료욵습쾴다. 잡지에 실린 글을 읽고 산에 다니며 나무를 채취해 와서는 삽목·취목 등을 해가며 번식을 시켰습니다.

그렇게 한 점 두 점 모으다가 군대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지요. 과수원과 병행하다 분재원을 시작한 건 서른 두 살 때 입니다.” 과수원 한 귀퉁이의 매화·자두·배나무에 취목을 해놓고 하루 에 두 번씩 물뿌리개를 들고 산비탈을 오르내리고, 남들이 눈여겨보 지 않는 부분을 공략할 요량으로 찔레·수양버들 등의 석부작에 열 중했다. 그 시절 돌을 줍기 위해 고향 인근의 시내와 ?을 수도 없쳀 헤매고 다녔다며 심씨는 당시를 회고한다.

분재와 관련된 전문 서적이 거의 없던 때라 일본 원서를 보기 위 해 일본어를 독학하고, 푸른회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분재 연구에 몰 두했다. 1989년 용인으로 터전을 옮길 때까지 심씨는 동호인들과 아 홉 차례 전시회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땅을 빌려 분재원을 했는데, 주인이 그 땅을 팔아버린 겁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서울 근처로 가자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 지요. 분재도 다른 화훼 산업처럼 대도시 근처에서 해야 경쟁력이 있으니까요.? 용인으로 온 이? 심씨의 냈동 반경은 더욱 넓어졌다. 한국분재 협회, 한국분재조합, 한국화훼협회 등 그가 몸담았고,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 한두 개가 아니고, 서울대 최고 경영자 과정, 연암 축산 원예 전문대 분재 강사 교육 과정, 안성산업대 농업 경영인 과정을 이수하는 등 기술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 을 기울여 왔다.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은 분재 용어의 재정립.

“일본에 분재 기술을 전수한 것은 우리인데 기술이며 이론이며 우리 나라가 일본에 많이 뒤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극릺하기 위해서는 분재 용어부터 우리말로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뜻 있는 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닮은 남편, 들꽃을 닮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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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재원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데 한쪽에 진 열된 토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 솜씨냐고 했더니 아내 최경혜 씨의 작품이란다. 아내가 몇 년 전부터 들꽃에 빠져들더니 이태 전 부터는 분까지 손수 만든다는 설명이다.

“그냥 취미로 하는 거예요. 들꽃의 화기로는 토분이 어울리거든 요. 짬 날 때마다 조금씩 만든 건데 들꽃 사 가시는 분?이 가끔 여 기에 심어달라고 하세요. 아직 돈 받고 팔 실력은 안 돼 그냥 드리고 는 하지요.” 차를 준비해 가지고 온 최씨가 부끄러운 듯 꺼내놓은 말이다.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기자의 질문에 살포시 웃음을 흘리는 최씨.“ 그냥 소개로 만났지요”라고 남편이 말을 흐리자 아내가 조분 조분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경남 합천에서 분재원을 하던 서른 두 살 노총각과 대전에서 직 장 생활을 하던 서른 한 살 노처녀가 처음 만난 이야기를 하자면 18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장을 다니며 서예를 배우던 최씨에 게 서예 선생님이 남편 심씨를 소개해 준 것.

“선생님 주선으로 남편을 처음 만났는데 자신은 고향에서 할 일 이 많아 당장 결혼할 수는 없다고 하대요. 저도 급하게 할 생각은 없 던 터라 처음 만나고 2년 있다 결혼식을 했어요. 하지만 결혼할 때 까지 교제도 변변히 못 했지요. 대전과 합천이 워낙 먼 데다 각자 일 이 있으니 가끔씩 편지만 했어요. 결혼할 때까지 네다섯 번이나 만 났나….” 꽃꽂이와 서예가 취미인 아내는 남편보다 남편의 하는 일이 더 마음에 들어 결혼을 결심했단다. 그녀는 돈 생각하면 더없이 고단 한 풰 일이라며, 둘이서 마주보고 앉아“ 이건 어떻게 자르면 좋으냐, 이건 팔지 말고 가꾸어보자”하며 작품을 구상하다 보면 세상에 이 보다 재미난 일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단다.

“이제는 이 사람 솜씨가 저보다 낫습니다. 제가 하루가 멀다 하 고 바깥출입이니 눈에 닥친 일들 거개가 이 사람 차지가 되니까요.

그래도 즐겁게 일을 해주니 늘 고맙고 미안합니다.”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 집의‘ 대장’과‘ 각하’가 들이 닥친다. 고등학교 1학년인 재호와 초등학교 4학년인 세영이다. 함 께 사진도 찍고 이야?도 나누어야 한다며 아이들의 이른 귀가를 부 탁한 터였다. 바르고 큰 사람이 되었으면 싶은 바람에 부모가 아이 들에게 선사한 별명이 대장과 각하이다. 요즘 들어 우리 나라 근현 대사에 부쩍 관심을 갖는 큰아들‘ 대장’과 체격은 반에서 가장 작지 만 배짱과 말솜씨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각하’. 엄마·아빠 모두 농사일에 바쁘다 보니 남들처럼 잘 거두고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부모는 늘 미안하다. 가끔씩 말썽을 피워 부모의 가슴을 철 렁이게 하지만 바쁠 때는 일꾼 한몫도 해내는 기특한 아이들이 있어 부캺의 삶은 더욱 행복하다.

“재작년인가, 이맘때인데 비닐만 쳐놓고 미처 끈으로 묶지 못했 어요. 집사람은 때 맞춰 몸져누웠는데 눈발이 날리면서 바람은 불 고, 큰애는 집에 없고. 돈 2000원 주기로 하고 각하를 꾀어 끈을 다 맸지 뭡니까. 그 이야기를 하니까 모두들 혀를 차던군요. 바쁠 때는 부지깽이도 뛴다더니 일손 하나가 무섭대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부의 눈꼬리가 처진다. 아직은 할 일이 많 아 서울 근교에 머무르고 있지만 아이들 교육이 끝나고 하던 일도 어지간히 마무리되면 정말로 전원다운 곳으로 들어가 분재 박물관 을 꾸미고 작은 찻집도 하면서 꽃과 나무 가꾸며 살고 싶다는 부부.

투박한 듯 털털한 남편은 나무를, 조용하고 소박한 아내는 들꽃을 닮아 있었다.

분재 분갈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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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뿌리가 자라도록 늙은 뿌리를 제거하고, 양분이 고갈된 토양을 새것으로 갈아주 는 것이 분갈이이다. 보통 봄에 분갈이를 하는데, 잡목은 눈이 틔기 전에 소나무는 눈 이 틔고 난 이후에 분갈이를 한다. 잡목 중 어린 나무는 1년에 한 번, 완성 목은 2〜3 년에 한 번, 소나무 어린 나무는 1〜2년에 한 번, 완성 목은 5〜6년에 한 번 분을 갈아 주어야 한다.

1 갈고리로 화분의 흙을 파낸다. 화 분에 흙이 꽉 차 있으므로 갈고리 를 돌려가면서 뿌리를 떼어낸다.

이때 망도 떼어낸다.

2 고정시켜 놓았던 철사를 제거한 뒤 갈고리로 뿌리의 흙을 털어낸 다. 잡목류는 흙의 반을, 소나무는 3분의 1을 털어낸다.

3 가위로 묵은 뿌리를 정리한다.

4 화분 구멍을 망으로 막은 뒤 철사 를 꽂아 고정한다.

5 나무를 고정할 수 있도록 화기의 작은 구멍에 철사를 꽂는다.

6 굵은 모래를 1㎝ 깊이로 깐다.

7 가는 모래를 깐다. 이때 흙을 쫙 펴지 않고 가운데가 수북하도록 깐다.

8 ⑦의 철사를 ?무의 뿌리에 꽂아 화분 속에 넣는다. 이때 흙에 뿌리 가 밀착되도록 비비면서 넣는다.

9 철사가 보이지 않도록 철사를 구 부려 뿌리 사이로 감춘 다음, 철사 끝을 서로 엮어준 뒤 펜치로 잘라 낸다.

10 뿌리와 흙이 밀착되도록 나무 젓가 락으로 다듬어 가며 가는 모래를 담는다. 분재의 형태를 구상한 뒤 원하는 선 밖으로 나간 가지는 잘 라낸다.

11 맑은 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물 속에 화분을 여러 차례 담근다. 이렇게 해야 흙이 뿌리 사이에 밀착되고, 불필요한 흙 가루가 제거된다.
[출처:전원생활]

12 뿌리 둥치에 비단 이끼를 씌워 ,223;출 한다. 이끼가 떨어지지 않도록 꼭꼭 눌러준 뒤 다시 한번 물을 흠뻑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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